이제 나도 한국 나이로 35살이다.
나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 앞에서 할머니 같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시간은 점점 빠르게 가는걸 느낀다. 눈 감았다 뜨면 후다닥 하루가 지나있다. 시간이 흐르는대로만 살다간 큰일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휴간 시간이 빌 때 한 해를 정리하고 2024년을 더욱 뾰족하게 만들고 싶어 근처 카페에 몇 번 들렀다. 그 기록을 옮겨 적는다.
종합
2024년은 크트가 방한 1위가 되고, 시리즈 C를 완성하고, 개인적으로는 담담해 질 것이다.
1년간 많이 방황하고 흔들렸었다. 임혜민 답게 24시간을 살아본 날이 많지 않았다. 감정의 밑바닥을 자주 다녀왔다. 돌이켜보면 365일 내내 끊임없이 불안해했고 나와 주변을 의심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슬럼프도 자주 있었다. 집중했던 시간보다는 집중하지 못했던 시간이 많다. 이제는 이러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완벽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나 또한 결핍이 있음을 받아들였다.
이 세상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로 이루어져있다.
불완전한 세상 안에서 나의 행복과 성취를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발 씩 내딛는 담담함과 우직함이 필요하다.
멘탈
내면을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금년이 처음이었다. 단순한 불안과는 달랐다. 혼자 있기 그 어느때보다 힘들어했다. 중요한 인간관계들이 의도치 않게 없어진 것과 답답한 회사 상황과 잘 맞물렸다.
금년에 기분이 바닥을 찍거나 불안할때면 지나치게 엄격했던 엄마를 처음으로 탓했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이나 공부는 무엇이든 다 하게 해주고, 나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고, 성적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 결과 나는 진취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 반면, 꿈에 몰입헀던, 영감을 주었던 그녀는 내가 탈선하는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친구들이 다 가는 PC방 조차 갈수가 없었다. 엄마는 필요 이상으로 엄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성적에 관심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해도 엄마에게 정작 인정받지 못했다. 어렸을때 엄마와 나의 관계는 갑갑했고 수직적이었다.
엄마가 당시 다른 엄마들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면 결핍이 크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다. 생각을 거듭할 수록 다행히, 나는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나 둘 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엄마 덕분에 나는 그 누구보다 씩씩하게 자랐다. 하고싶은 공부나 스포츠는 원없이 했었다. 만약 그녀가 나를 평범한 방식으로 사랑했다면 난 지금의 강점들을 갖지 못했을것이다. 모든 일은 장단이 있다. 유전적인 확률로 태어났을 뿐인데 직계 가족을 원망하는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엄마는 그 때 그 시점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고 싶은걸 다 못한것도 아니다.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곳들은 거의 다섯살 때부터 혼자 다니게 해 주었다. 자전거나 컴퓨터와 같은 기계도 아주 어린 나이부터 혼자 쓰게 해주었다. 덕분에 나와 동생은 일찍부터 많은 역량을 탑재했고, 인생에 대한 선택들을 스스로 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빠르게 배운다.
결국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좋은 점만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맞다. 금년의 큰 깨달음은 담담함과 우직함, 나다움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를 옆에서 묵묵히 지지해주었던 사람들을 제때 못알아 본것 같다. 금년에는 더 많이 고맙다고 표현하고 나도 단단한 상태로 옆자리를 지켜 주고 싶다.
금년엔 단단해져야지.
문화생활
혼자 있을 때 가장 좋아했던 나의 취미 독서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돌아보면 지적 능력이 많이 향상된 해는 아니었다. 영화도 많이 못 봤다. 오펜하이머도 놓쳤고 마블 시리즈물이나 영화도 거의 다 못 봤다 (23년 마블 콘텐츠들이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과는 별개이다). 로키도 이제서야 시즌 2를 거의 다 끝냈다. 문화생활을 많이 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혼자 있을 때 불안정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안정적일 때는 혼자 앉아서 책을 고르는데만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마블 영화에 푹 빠져 온갖 자료들을 찾아보며 좋아했었다.
올 한해엔 나름 안정감을 찾은 만큼 책과 영화를 다시 가까이 해야겠다.
운동
그 어느때 보다 체력이 좋아진 한 해였다. 근육도 늘었고, 더 오랜시간 고강도의 유산소를 견딜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꿈에 그리던 축구나 농구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F45를 금년에만 250회는 넘게 했다. 다니던 F45 지점이 문을 닫는 다는 소식에 저녁 내내 (정말로) 우울했던게 생각난다. 나의 운동 경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F45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니.. 그 어떤 운동도 F45보다 활력 넘치는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운동을 못하는 몸상태가 너무 답답해 내친 김에 가까운 헬스장에 등록했는데, 마침 내가 슬슬 신경써야 할 느낌이 드는 분야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 최근에 슬슬 자세 교정에 소홀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목이 안좋아지는 불안감이 있었다. 나는 척추측만증이 있어서 어렸을때 고강도 치료를 받곤 했었다. 수만가지 치료법은 거의 다 받아봤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해당 분야에 매우 해박한 편이라 말이 잘 통했다. PT를 다시 해보기로 했다.
금년 상반기까지는 헬스에 집중하며 F45에서는 신경쓸 수 없었던 몸의 균형을 다시 찾겠다.
건강
그 외의 식습관 개선은 요원했다. 일 년에 수차례 과자를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오히려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2023년 하반기에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나트륨에 약한 편이라 짠 음식을 피해야 하는데 국밥 등을 평소보다 가까이했다. 과자에, 짠 음식에… 그 결과 운동한 만큼 비율은 좋아졌지만 몸 속은 좋지 않았다.
와인을 줄이게 되면서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은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다음날 신경쓰일 정도로 마시곤 했는데, 2023년에는 과음한 날이 손에 꼽는다. 무엇보다 다음날 힘든게 점점 싫었다. 이제는 술은 나에게 즐거움의 영역보다는 미식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 같다. 프로답게 술을 미식으로 즐길 수 있는 나를 칭찬한다.
2024년에는 과자를 줄이고 야채나 가공하지 않은 식품들을 훨씬 가까이하기로 다짐한다. 이대로 가다간 40대 때 아플 것 같다.
소비
소비는 원없이 했다. 명품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운동복이나 기계 등은 사고 싶은게 있으면 망설이지 않았다. 저금도 계획대로 했다. 나는 지금 생활 수준이면 충분하다. 물론 운동이나 미식등의 종류를 더 다양하게 하고 싶긴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지금 당장 금전이 생기더라도 즐길 수가 없긴 하다.
대표의 자질
임혜민의 강점을 활용하여 조직을 성장시켰어야 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팀 내부적으로는 좀 더 집중하게 만드는 일, 외부 파트너들을 설득해 우리 크트 플랫폼에 얹는 일이 나의 강점이다.
상반기 때는 강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것 같다. 경영지원 팀이 불안정해서 인수인계를 하는 과정도 필요했고, 리더급들이 서로 적응하게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몇몇 일들은 아직도 크트에 레거시로 남아 있다. 하반기 때 들어서야 대표 임혜민으로서의 역할을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남아 있다.
스스로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던게 나의 전반적인 퍼포먼스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내가 가진 강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그리고 안정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실무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시간. 종종 불안한 상태에서 집중력을 잃어 이 시간들을 확보하지 못하고 땅에 버려진 시간들이 많은게 조금 아쉽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물론 못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30억 정도의 자금도 회사에 가져왔고 몇몇 킬러 아이템에 대한 가능성도 보여줬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더 잘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놓친건 아닌지 후회가 된다.
금년에는 상반기 월 burn을 2억 수준으로 줄이고 시장 독점을 위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조금만 더 집중하면 해 낼 수 있다. 금년에는 빠르고 신속한 결정을 하고 집중력을 잃지 않고,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임혜민이 되겠다 다짐한다. 잘 될 것 같다!
2025년 1월 1일 이 글을 봤을때 흐뭇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