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의 부대표는 나와 대학생때 절친한 선후배였다. 선배였던 (그 후 친구가 된) 그와는 동아리 행사에서 만났다. 내가 활동하는 동아리에서 워크샵 비스무리 한 행사가 있었고 그 행사에 그가 왔다. 처음엔 차가워 보였지만 뭔가 호감형인 그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고 꽤 금방 서로 익숙해졌다. 그는 본인이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에 지원해 보라고 역제안 했다. 좋은 선배라고 생각해 어떤 동아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지원했다. 그 때 당시 그 동아리는 8~9명 남짓의 매우 작은 동아리였다.
입사(?)후 동아리의 다른 동기나 선배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다들 호탕한 성격에 미식과 술을 좋아했고 일할 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학부생 생활에서 연애 말고 큰 자극을 느끼지 못했던 나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잘 맞았다. 동아리에서 하는 활동은 사회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지금으로 치면 창업동아리 같은-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창업 놀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너무 미숙했다ㅋㅋ. 동아리 활동이 재미있어서 4학년임에도 학교 공부를 소홀히할 정도였다. 매일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고, 동아리 팀원들을 어떻게 더 충원할지, 왜 팀원이 자꾸 나가는지, 제휴처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왜 우린 억울한지 따위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 때 만난 사람들은 지금도 가장 친하고 서로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생의 선후배들로 남았다.
동아리 하는 기간 동안 그와는 특별히 더 친해졌다. 밥 친구가 없으면 서로 연락해서 학식이나 주변 주먹밥 집에서 으레 밥을 같이 먹었다. 사는 곳도 가까워서 서로 집기류 따위를 나눔하기도 했다. 그 때도 감정을 많이 표현했던 나는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가끔 전화해 맥락없이 주절대곤 했는데 그는 말없이 들어주었다. 아마 관심없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기 엄청 피곤했을 것이다… 그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한결같은 친구였다. 딱히 엄청 잘해주지도 못해주지도 않지만 찾을땐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지금 회사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활발하고 장난기도 많았다. 친구들끼리 서로 짖궂은 농담도 하고 술자리에서 다같이 재밌게 놀았다. 나는 그와 친구들의 장난기를 사랑했다. 페이스북에 서로의 외모를 비하하면서 놀았던 댓글들도 많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린 아무 걱정도 근심도, 이해관계의 충돌도 없었다. 취업 걱정도 없었었다. 뭔가 우리 정도면 좋은데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고 위트가 있고 경험도 나보다 많았고 똑똑했다. 그가 가진 강점 중에 많은 부분을 옆에서 배웠다.
몰입해서 일하는 것도 잘 맞았다. 우리의 동아리는 연례 큰 행사가 있는 연합동아리였는데 그 행사라는 건 비즈니스 성과를 학교별로 경쟁하는 작은 축제 같은 것이었다. Competition을 위한 발표자료를 만들기 위해 매 학교들이 거의 한달간 크런치 모드에 돌입한다. 나와 그, 그리고 선후배들 또한 동영상을 만들고, PPT 장표를 만들고, 엑셀로 숫자들을 계산하고 발표 연습을 한답시고 방학 때 고향에도 가지 않고 밤을 새기 일쑤였다. 밤을 샌 후에는 맥모닝도 다같이 시켜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근심없이 치열하게 몰입했던 시기가 그때 뿐이었다. 밤새고 들어가서 일어나면 묵직한 피곤함과 함께 ‘빨리 다시 작업하러 가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축복같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흘러 그는 휴학 후 작은 창업을 경험했고 나는 취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직장 생활이 힘들어서 그만 둔다고 여전히 먼저 상담을 하곤 했었다. 그는 배가 불렀다고 멘탈이 약하다고 묵직한 피드백을 주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더 버틸걸 이라는 생각도 든다. 난 확실히 약했었다. 그럼에도 회사 생활이 버거웠던 나는 퇴사한 후 대학원을 거쳐 지금의 크리에이트립을 창업했다. 그가 묵직하게 전해주고 나의 소리를 들어준 시간들은 큰 도움이 되어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찾을때 나는 언제든지 시간을 내야한다는 마음가짐이 더 강해졌다.
의외로 그는 나의 창업을 흥미로워했다. 내가 창업을 하는 동안 그는 대기업에 입사했고 1번의 이직을 했다. 중간에 종종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던 나는 그를 받아주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무실은 지하1층으로 열악했고 그가 받는 대기업의 월급을 맞춰주긴 어려웠다.
우리 회사가 Pre-A 펀드레이징을 마친 시점에 나는 좀 자신감이 생겼다. 적절한 보상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회사 주변에서 몇 번 밥을 먹으며 입사 제안을 했다. 그렇게 친구는 나와 크리에이트립을 같이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입사한 후 제휴를 맡았다. 그때는 회사가 5~6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영업을 뛸 사람도 부족했다. 나와 그는 나눠서 직접 가게들을 돌며 우리 회사와 제휴해달라고 설득했다. 내가 꼭 제휴해야 한다는 상점이 있다고 하면 ‘그래? 내가 갔다와보지 뭐’라고 하면서 패딩을 꽁꽁 싸매고 바로 사무실을 나서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대학생때도 그랬지만 두려움이 없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좋을 때도 있었지만 초기 우리의 관계는 스타트업 드라마 그 자체였다. 난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그가 회사에 있는게 매일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미숙한 탓에 그를 친구로만 대했었고 그가 출근한다는 즐거움에 빠졌었다. 비즈니스 신뢰를 충분히 주지 못했었다. 우리는 의견 충돌과 섭섭함으로 새벽까지 카톡으로 싸울때도 있었다. 회의실에서 논쟁하며 3시간을 훌쩍 보낼 때도 많았었다. 종종 화날 때 그는 “내가 정말 친구니까 이렇게까지 하는거다” 류의 말을 하곤 했었는데, 그 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제휴 외에도 다양한 일에 발벗고 나섰다. 우리는 그 당시 개발 조직이 매우 빈약했었다. 공동 창업한 CTO와의 부침을 겪고 개발 조직은 너덜거렸었다. 그는 개발 조직 안정화에 노력했다. 결국 기술적인 소통이 어려웠던 그는 개발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개발자들과도 무리없이 소통하고 우선순위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정해 줄 수 있는 역량 하나를 더 탑재했다.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대학교 때 느꼈던 존경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를 충분히 인정해 주지 못했다. 바빴기도 했지만 그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데 왜 내가 그를 인정해 주어야 할까? 라는 치졸함이 더 앞섰다. 나는 역량 있는 사람이 팀에 있다는 사실을 담기엔 부족한 대표였다.
그도 나를 인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타운홀에도 나서지 않고 투자자들과 소통하지도 않았고 나에게 온전히 소통의 일들을 맡겼다. 정치 따윈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딱 퇴근하고 집에서 일을 이어가곤 했다. 공식적인 회식 자리 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회사가 중요한 사항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묵직하게 따로 의견을 나누곤 했다. 회사를 창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내가 회사 현금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 펀드레이징이 급해질것 같다라고 공유하면 현금 지출을 더 줄이거나 제휴를 통해 가져올 방법을 하루이틀 안에 빠르게 고민해 주었고 나의 설명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말과 행동은 앞뒤가 같았고 항상 성과만을 생각했다. 그가 한 행동들은 대부분 나의 단점을 보완했고 회사가 성장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그의 묵직한 피드백이 싫었다. 대표의 고집을 회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꺾어야만하는 그의 아이러니하한 소통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소통 방식은 기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말대로 좀 해주면 안되는지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서 괜히 못들은척 하거나 날선 답장을 하곤 했었다. 난 어렸고 성숙하지 못했다. 그와 좀 더 재밌게 일할 수 있었던 기회는 미숙했던 나 스스로로 인해 많이 없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에게도 인정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외롭게 자신이 결정해서 들어온 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의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가끔 그가 화를 낼 때 받아주지를 못했고 그를 탓했다. 매우 적은 지분율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그의 객관적인 노력들과 회사 내에서의 성과들을 알아주지 못했던게 미안하다.
그는 심지어 인정욕구가 있는 사람이었고 나와 성향도 비슷했다. 얼마 전 리더 워크샵 세션 성향 검사에서 그와 일치하는 성향이 5개 중 3가지 이상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를 10년이 넘게 알아오면서도 정말 몰라주었구나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성향에, 대표도 아닌 그가 얼마나 많이 참고 노력했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나 같았으면 얼마 못견뎠을 것이다. 흠.. 내가 대표로서 잘했기 때문에 그가 남아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새롭게 합류한 팀원들은 말수가 없고 단호한 그의 모습을 보며 회사가 그의 사적인 욕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가 어디까지 생각했는지, 그가 얻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것들을 묵묵히 해 왔는지 몇몇 멤버들이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정작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해야할 일을 할 뿐이다.
그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는 이유는..
최근 회사가 턴어라운드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슬럼프와 난생 처음의 무기력을 겪으며 나를 바닥까지 내려다 본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유년기까지 내려가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는 내가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회고하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 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보기보다 강하지도 않고 그릇도 작은 나를 대표로서 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문득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슬랙으로 가끔 고생했다, 런칭 고맙다의 짧은 단어들을 나열하고는 했지만 기계적일때가 대부분이었다. 처음으로 마음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학부생때도 서로 다정한 적이 없었어서 그런지 고맙다는 메일을 쓰기가 어색하고 힘들었다. 메일을 쓰다가 5명의 팀이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인정하지 못했던 과거들을 돌아보며 고마운 마음에 혼자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조금 울었다. 나도 이제 더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건가? 그는 아마 여기까진 모를 것이다 ㅋㅋ
그는 이제는 나와 친구 관계가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었다. 오늘도 그와 나는 회사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한다. 크리에이트립이 어떤 방식으로든 종료하게 되면 가장 기대되는 것 중의 하나는 그와 친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날이 기대된다. 고마워 규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