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연인들끼리는 꽃 선물을 하기도 한다. 남자친구들은 연애 초반에 꽃을 사주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고마워! 이번 꽃은 잘 키워볼게. 그래도 다음엔 꽃보다는 맛있는걸 같이 자주 먹자’ 라고 말했었다. 물론 선물을 받을때면 항상 고맙고 뭉클했다.
연애 초반에는 무슨 선물이든 좋아할 타이밍이지만 시간을 들여 고른, 남녀노소 좋아하는, 심지어 결고 저렴하지 않은 선물인 꽃이 싫다고 하니 답답했을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집에 꽃병도 없고 향기가 잘 맞을지 알수도 없고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정립이 안되서 등등의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궤변이 틀림없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그러다 최근에 산책을 하면서 예쁜 보라색 꽃을 보게되었다. 문득 어렸을 때도 꽃을 ‘예쁘다’라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는게 떠오르면서 나는 꽃을 좋아한다는 급작스러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유년기때에도 수국이나 벚꽃을 보는걸 좋아했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유난히 풍성한 수국들이 여기저기 심어져 있었는데, 파란색 분홍색 보라색 흰색이 동그란 모습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진 분위기들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수국과 비슷하게 생긴 벚꽃도 좋아했다.
그럼 꽃 선물은 왜 싫었던걸까?
시들 것을 미리 걱정하는 나
생각해보니 나는 꽃이 시드는걸 걱정했었다. 아무리 물을 주고 케어해도 결국 뿌리가 없는 꽃은 갈곳 없이 시들고 만다. 뿌리가 있다면 다시 다음 계절에 태어날 수 있지만 이미 꺾인 꽃은 그렇지 않다. 받을 때는 화려했던 꽃들이 힘을 잃어가는 모습은 보기 불편하다. 뿌리가 있는 꽃들에게서 안정감을 느끼고, 뿌리가 없는 꽃들에게서는 곧 스러져버릴 예정된 무상함을 느낀다.
최인아 책방의 대표 최인아 님이 쓴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서도 꽃 선물을 반기지 않았던 저자의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생화를 받는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늙음을 받아들이기 싫어서라고 했다. 저자의 마음에 많이 공감했다.
나약해질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한 걱정
시들어가는 꽃을 볼 때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라는 과도한 이입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 부터 죽음에 대한 예기 불안도 꽤 있었다. 나는 지금 너무 즐겁고 행복한데 혹시나 이 모든걸 즐길 수 없게 되어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도 많다. 즐기지 못하는 내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꽃은 그냥 꽃이고, 꽃을 받은 사실을 즐거워하면 된다. 하지만 난 그들의 마음 자체에 행복하지 못하고 꽃을 사랑하면서도 뿌리 없는 꽃의 나약함이 나에게도 스며들까봐 걱정했다.
한창 힘들었을때 기질/성격 검사라는 것을 받아보기도 했다. 검사 결과는 정반대의 기질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면서 인내심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 인내심엔 예기불안이 자리해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 있었다. 미래에 불안해하면서 현실에서 참으며 끊임없이 노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그러면서도 행복하기 어려울 완벽주의자일 수도 있다고 했다. 적어도 기질적으로는.
지금부터는 꽃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다.
앞으로는 꽃을 즐기고 싶다. 선물 받은 꽃을 충분히 즐기고 스러져 가는 꽃을 화단에 묻어줬다면 다음 꽃의 자양분이 되었을 수도 있다. 꽃이 좋았다고 어필해서 꽃과 관련된 장소에 가자며 데이트 횟수를 늘렸거나 꽃이 만개한 제주도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가서 더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하다못해 그 아름다웠던 꽃다발의 사진을 찍어서 인싸처럼 소셜 미디어에 자랑하고 더 많은 꽃다발을 받을 기회로 삼았을 수도 있다.
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다 결국 나의 기질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맞닿았다.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생각에 혼자 실소가 나온다ㅋㅋ.
맞아. 난 꽃을 즐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