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보다가 80% 이상이 꽤 슬픈 가사의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플레이리스트를 본 친구는 나의 현실 성향과 정반대인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된다고 했다. 친구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보니 나의 플레이리스트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이런 내 취향은 어디서 온 것일까?
현실은 결국 내가 노력해야 긍정이기 때문에..
얼떨결에 토론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슬픈 노래를 많이 듣는 이유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역으로 희망적인 노래를 많이 듣지 않는 이유를 먼저 떠올렸다.
솔직히 긍정적인 노래가 불편할 때가 많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의 미래는 노력하면 언젠가는 긍정일거고 노력하지 않으면 부정일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밝을거다, 행복할거다라는 말이 오히려 불편하다. 미래가 밝을 거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일까라는 의문도 든다.
문득 토론을 하다보니 개인 취향을 내가 판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믿는건 자유지만 다른 사람에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인풋을 넣지 못하는 상황인 사람들도 있을거고 더 강조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 한 곡에 다 담아내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꼰대 마인드를 예술의 영역에 주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표현과 선율이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에..
보통 슬픈 곡들은 표현력이 풍부하다. 긍정적인 단어들은 역설적으로 무게가 덜한 경향이 있다. 행복하다, 고맙다, 즐겁다 등과 같은 단어를 떠올려보면 마음의 울림은 덜한 편이다. 오히려 보고싶다, 마음이 아프다, 울고 싶다 등에 훨씬 잘 공감이 된다. 특히 영어는 더 그런것 같다.
선율이나 사운드의 풍부함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곡의 선율은 직관적이다. 추가 해석의 가능성이 많지 않고 예측가능하다. 반면 슬픈 노래들은 복합적인 멜로디일 확률이 높다. 표현 방식도 각각 다르다. 특정 악기를 쓸 때도 있고 가창력으로만 표현할때도 있다. 혹은 가창력과 멜로디, 그리고 강력한 악기들을 활용해 한꺼번에 울림을 주는 곡들도 많다.
가끔 블로그에 쓰는 것처럼 TPO가 맞을때 특정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풍부한 표현력에 울림이 너무 큰 나머지 한두시간을 그냥 날릴때들도 있다.
나약해도 솔직한게 좋다
한 친구는 ‘우리가 맞다는 대답을 할거에요’ 라는 곡을 추천했다. 좋은 노래들을 감상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굳이 음악 감상을 통해 긍정력을 충전해야 하는걸까? 약한 걸까?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에게 내 감정을 그대로 말하면서 나는 완전 꼰대고 이렇게 생각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성격좋은 그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꼰대가 아니라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에 대한 목적 자체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 너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의 약한 모습을 털어놓으면 날 판단하지 않고 바로 지원했잖아.”라고 이야기했다. 뭔가 부끄러우면서도 좋게 이야기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어쩌면 ‘난 강하니까 잘될거야’라는 표현들보다는 슬픈 곡을 통해 ‘지금 나는 힘든 상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한 인간의 모습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약할때 약하다고 인정하는게 가장 강하다.(짜증과 화냄, 무조건적인 요구과는 엄연히 다르다.)
친구는 긍정력을 얻기 위해 음악을 듣고, 나는 음악을 평소 꺼내기 힘든 표현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슬픈 노래에 나온 감정 자체를 나 스스로도 현실 속에서 느껴본적은 많지 않다.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가 확장되는게 좋기도 하다. 대학생때 Bruno Mars의 Grenade를 들으면서 아 정말 좋아하면 수류탄을 대신 잡을 수도 있구나! 이런 표현이 있다니! 이런 깊은 감정도 느껴보고싶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떠올랐다. (가사: I’d catch a grenade for you.)
사람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내가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 감상을 감정을 더 이해하고 솔직함을 느끼기 위한 창구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결국..
나는 결국 모순이 가득한 어쩔수 없는 인간군상 중 하나인것 같다.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해 부정하면서도 슬픈 감정들을 노래하며 소위 약함을 이야기하는 곡들을 좋아한다.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이 많다.
요즘 듣는 노래
- That’s not how this Works – Charlie Puth
- Shallow – Lady Gaga
- Want you back – 5 Seconds of Summer
- Lemon – Kenshi Yonezu (일본의 GD라고 한다)
-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 김동률 (슬프지는 않다..?)
너가 언어를 좋아해서 다양한 표현을 접하니까 슬픈 곡을 좋아하는게 맞는것 같다. 예전 글들까지 쭉 한번 읽다가 이 글부터는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나? 상반기 가기 전에 술한잔 하자 연락할게
지금 매우 괜찮아 그래도 맛있는건 언제나 환영!!!
지독한 성장주의자 혬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