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계절처럼 겨울이 정신 없이 지나갔다. 봄이 되니 개나리도 보이고 벚꽃도 보인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인지 계절이 가는게 아쉬워서 산책도 평소보다 더 자주한다. 짬내서 생각 정리도 할겸 산책과 가벼운 등산도 한다. 계절의 변화는 산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는 옛날 분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
예전에 듣던 플레이리스트들 중에 봄 느낌이 드는 음악들을 자연스럽게 다시 듣게 된다. 덕분에 자주 듣지 않았던 오래된 곡들의 숨겨진 매력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최근엔 오래된 한국 노래들을 자주 듣는다 (K-POP의 카테고리엔 들어가지 않는것 같다..). 봄 기운 속에서 내가 요즘 다시듣는 한국 노래들을 기록한다.
그댄 달라요 – 버스커버스커
원래 한예슬 님이 NONSTOP 4의 OST로 부른게 원곡이다. 그 후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에서 리메이킹했다. 지금의 나는 버스커버스커 버전이 더 좋다. 이 노래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가 우연히 퇴근길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듣게 되었다. 예전에 기억했던 것 보다 곡 자체가 훨씬 풍부해 적잖이 놀랐다.
한국어의 아름다움
이 곡의 가사는 100% 한국어다. 소위 ‘사랑에 빠진다’는 건 흔히 어쩔 줄 모르는 기분과 설렘, 조급함, 기대 등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 감성들의 추상적인 느낌을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하는게 아이러니하다. 추상적인 표현이 많을 수록 정서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는게 재밌다. 굳이 영어를 활용하지 않고도 풍부한 감정들을 잘 표현한다. 개인적으로는 장범준 님의 목소리가 순수하고 애틋한 단어들에 조금은 더 맞다고 느낀다.
피아노와 기타의 묘한 조화
또한 이런 감정들이 음악적으로도 풍성하게 전달된다. 후반부에 등장한 피아노 선율이 메인 멜로디와 합쳐지면서 꽉찬 감정을 표현한다. 이 곡의 메인 악기인 기타와 어우러지는 피아노가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묘하게 감정선을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후반부에서는 ‘풍부하다’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를 정도로 몰입했다. 최근에는 어떤 형태로든 피아노 선율이 있는 노래들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친구들과 꼭 한번 연주해 보고 싶다.
다시 시작해보자 – 김동률
한국 가수 중에서는 김동률을 가장 좋아한다. 사람이 매우 많은 곳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 콘서트까지 가볼 정도로 좋다 (그 콘서트 이후에 쓰나미가 너무 커서 하루 종일 김동률 노래들을 틀어놓고 듣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는 존경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질리지 않는 클래식함
이 곡을 포함한 그의 곡 대부분은 아직도 질리지 않는다. 이 <다시 시작해보자>를 피아노로 연주해보기도 했고, 친구들이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어떤 악기로 연주해도 매력이 새롭다. 그가 클래식과 대중가요에 대해 모두 깊게 이해하고 있어서인지 곡 자체의 깊이감에서 오는 매력이 20년째 유지되는것 같기도 하다.
가사, 가사, 가사
그의 노래가 아직도 10년이 훨씬 넘게 울림을 주는 건 꾹꾹 눌러쓴 가사 덕분이다. 그의 최근 곡들은 제목이 영어인 것들도 있지만, 여전히 가사는 100% 한국어이다. 화려한 단어들이 아닌 일상 속 언어들로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가수가 아닐까 싶다. 그의 노래 중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취중진담>과 같은 명곡들이 있지만 (물론 이 곡들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시작해보자>가 일상 속 언어들을 김동률답게 가장 잘 소화한 노래라 생각한다. 듣는것 만으로도 헤어짐 이후의 상황과 고민들이 뚜렷하게 연상되고 감정에 이입마저 되는 이 노래가 좋다. 한참을 빠져서 들을 수 있는 노래.
한번 더 이별 – 성시경
성시경 노래는 초등학생때 종종 들었던것 같은데, 할머니는 그때 초등학생이 이런 노래들을 듣고 있으니 다소 어이없어 했다. 지금은 할머니가 그 때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대학생때 이 곡을 듣고 싶었지만 이별 직후라 혹시나 우울해질까봐 듣지 못하고 시간이 흐른 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가 심했을때 유투브 딩고 채널에서 성시경이 나온 라이브를 듣고 강하게 리마인드 됐다. 지금도 성시경 딩고 동영상은 한달에 한번은 듣는 것 같다. 다른 곡들도 너무 좋지만 특별히 <한번 더 이별>은 깊은 여운을 남기고 감정선을 정리해가는 과정이 듣기 좋다.
지금은 한강에서 멍때릴때나 가끔 일부러 가라앉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듣는다. 원곡에서는 다양한 악기가 있지만 피아노로만 연주해도 너무 좋은 곡이다. 종종 성시경 같은 목소리를 가진 친구가 있어서 같이 녹음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국어로 100% 이루어진 가사들도 공감력 100% 이상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 좋다. 내가 사랑하는 명곡.
비밀의 화원 – 이상은
이 곡은 론칭 된 직후에도 꽤 자주 들었었다. 이 곡 또한 벌써 10년이 더 된 곡으로, 모든 가사가 한국어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곡들처럼 다양한 악기가 활용되진 않았지만 그녀가 가진 매력적인 목소리 덕분에 한국어의 매력과 감성이 잘 드러나는 명곡으로 변신했다. 그래서인지 리메이크 된 곡들은 나에겐 매력이 덜한 편이다. 상큼하고 활달한 곡의 분위기 덕분에 운전할때 창문 열고 듣기 좋다. 운동하러 갈때 자주 듣는다.
봄을 마무리 하며..
이렇게 여러차례 계절이 바뀌기 시작하니 아무래도 지금 나의 취향은 예전의 나의 그것 보다는 많이 달라졌다. 미국 팝으로 가득찬 플레이리스트에 한국 노래들이 하나씩 쌓인다. 그 때는 와닿지 않았지만 그동안 쌓여온 경험과 생각들이 조금씩 취향을 완성하는게 신기하다.
내년 이맘때 쯤에도 더 좋은 예전 노래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아직도 김동률인 햄 누나…… 냉동인간…..
그댄달라요 리메이크 버전 리얼로 좋은데? 비올때 듣기 좋다ㅋㅋ
비올 땐 감성이 풀로 확장되서 오히려 못들을거 같은데욥 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