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공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정확히 1년 전에 작성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풀 스토리로 털어내지 못한 나의 내면 이야기.
난 긴 연휴가 대체적으로 반갑지 않다. 회사에서의 주요 이니셔티브가 올 스탑되니까 답답한게 제일 크고, 혼자 가만히 있으면 무기력함과 외로움이 올라오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IR 중이었다면 사실 연휴가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혼자 일하고 데이터 정리할 시간이 있으니까) 지금은 감정이 자꾸 옆으로 빠진다.
아니나 다를까 연휴에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묵직한 감정들이 올라온다. 오늘은 나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써 본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 내 스스로를 단 한번도 강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주변에 날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가족도 있어서 외롭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나는 외로움을 견딘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 누구보다 외롭고 연약하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
어렸을때 나는 혼자서 시간을 보낸적이 거의 없다. 할머니와 있거나 친구들이나 동생과 밖에 나가서 놀았다. 지금 어른이 되서 생각해보면 대체적으로 사회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기질이었던것 같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소속된 그룹에서 이것저것 실행하는걸 좋아했다.
엄마는 나에게 굉장히 엄격했다. 공부로 엄격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학원에 거의 보내지 않았고 주어진 시간은 알아서 쓰게 했다. 반면 생활습관에는 엄격했다. 시간을 지키는 것, 집을 정리하는 것 등등.. 능력있고 당찬 엄마를 존경했지만 엄마와의 마음 거리는 멀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할머니나 동생이 없고 엄마가 있으면 답답했고 사회적인 자극을 추구했던 기질은 강화되어서 항상 친구들을 찾았다. 친구들이 다른 일로 바쁘면 심심하기도 하면서 불안했다.
엄마는 내가 욕심이 많아서 노심초사했다. 나는 초등학교때 반장을 먼저 나가고 추진하는 것들을 시키지 않아도 도맡아했다. 받아쓰기도 웬만하면 틀리지 않았고 공부도 혼자 곧잘했다. 엄마에게는 오히려 열심히하면 잘하게 되는건 당연한거고 겸손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의 사회적 위치와 엄마의 인정은 온도차이가 컸다. 엄마는 사택 엄마들이 나에게 공부 비법을 물어보는 상황이 나의 자만심을 높일까봐, 내가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봐 걱정했다. 그렇지만 철없었던 나는 적어도 노력에 대한 인정이 필요했고 논리가 필요했던 엄마와의 관계에서 답답해했다. 그러면서도 해 주는 말 한마디에 의지했다. 대체적으로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전전긍긍했다. 돌아보면 엄마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가 표현이 없을때 그녀의 마음을 의심하곤 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중학생이 되고 알츠하이머로 인해 집에 없었다. 여수를 벗어나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나주로 진학했고 거기서 치열했지만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했다. 몰입하고 마인드셋이 좋은 친구들이 항상 옆에 있었고 난 그들을 좋아했다. 친구들은 나를 의지했고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다들 표현을 많이 했었다. 물리적으로 엄마와 멀어진 덕분에 엄마와의 관계는 오히려 돈독해졌다. 그 때도 친구들은 나에게 ‘강하고 든든하다’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와 그들의 인지부조화를 조금씩 느끼곤 했다. 난 너희들이 없으면 불안한데. 하지만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강하고 누구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인싸라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 대학교에 진학하고 ‘공식적인’ 첫 남자친구를 만났을때 나의 성향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첫 연애에서 혼자 있기가 생각보다 힘들었고 그가 나를 인정하는지 전전긍긍했다. 같이 방을 쓰던 일본 친구에게 이런 감정을 해결하고 싶다고 자주 토로했었다. 룸메이트는 밖으로 보이는 나의 성향과 반대된다면서 놀랐지만 곧잘 이해하고 힘이 되주었다. 고마워 모찌. 그렇지만 난 나의 성향이 너무 답답했다. 절대 행복해 질 수 없는 성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마음에 대한 의심이 생길때 노력하지 않았고 손을 놔버렸다. 돌아보면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전전긍긍하면서 안에서 썩고 있었다.
몇 차례 이성과 친구 관계에서 이런 패턴을 겪고 조금씩 나를 알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소수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이 중요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걸 알고 나서, 이런 나의 모습이 더욱 더 자랑스럽지 않았다. 강인해 보이지만 의존적인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사회성이 좋은 편이었기에 나의 내면 상처들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는 강하고 항상 진취적이고, 해결책을 내놓고, 밝은 친구라고 생각했고 나에게 의지했다. 물론 나도 스스로 강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강한 모습은 나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큰 어려움을 몇번 겪은 이후 난 정말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겪으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골똘히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걸 기피해왔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서웠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시간으로 덮어버렸다. 더이상 안될 것 같아 혼자서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기로 마음먹었다.
몇번을 들여다보다가 임혜민이라는 사람은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싶지 않아서 괴로웠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속이 시원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을 소통하고 사랑과 인정을 바라는 나의 모습을 타인 앞에서 털어놓는 법을 배웠다. 정말 친한 사람들은 내가 불안함에 펑펑 우는 모습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그 후 긴시간동안 서서히 많은 것들이 좋아졌다. 원래 밝았지만 더 밝아(?)졌고 더 강해진건 맞다. 이제는 꽤 오랫동안 솔직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나를 솔직하게 내려놓으면 사람들은 나를 더 자주 찾고 의지한다. 타인의 평가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여유도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자신감 레벨도 높아졌다. ‘뭐 어쩌겠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정에 목마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IR도 잘하고 설득도 잘한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대체로 나처럼 고군분투 하고 있었는데, 내가 별것 아닌 완벽주의로 인해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어했고 불가능한걸 시도하고 있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대체적으로 불안한 날이 많지는 않다. 그럼 행복한 것이다.
오늘 불안해도 대체적으로 괜찮다. 만약 언젠가 또 불안이 펼쳐진다면 그건 어쩔수 없이 내가 태어난 원죄라고 생각한다. 불안함이 삶을 집어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습득한 후엔 나름 단단하다. 이 불안함 또한 나의 내려놓음과 단단해짐, 그리고 사람들의 도움으로 얼마 안가 사라진다.
그래도, 아직도, 완벽하게 고쳐지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아직 좋아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차오른다. 특히 이런 긴 연휴때 많은 생각을 한다. 나 잘하고 있는거 맞지? 나 보고싶은거 맞지? 나 외로운 할머니가 되지 않는거지? 물어보고 싶다. 욱하고 감정들이 올라오면 멍하니 어쩔줄을 모른다. 회사는 노력하면 우상향인데 자존감은 컨트롤이 잘 안된다. 100% 차지 않았다. 아직 내 인생도 미생이다.
생각을 정리해서 마음을 터놓은 사람들에게 카톡을 했다. 그들은 자기도 그렇다며 스스로를 사랑하자고 위로해 주었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라고. 누구나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고. 너가 지금 털어놓는게 오히려 고맙다고. 연약함을 인정하자고. 존경하는 어떤 창업가는 인간은 원래 자연으로 돌아가니까 오늘 행복하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다른 친구는 그런 감정을 본인도 느끼고 나도 느껴도 되는거라고. 인정하는게 강한거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맞아. 난 아직도 나아지고 있고 너희들의 마음과 표현이 필요해. 미안하고 고마워.
글로 내려놓으니까 훨씬 후련하다.
부끄럽지만 이런 나의 고백이 비슷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좋은 글이 있었네. 나중에 크리에이트립이 성장하면 이 글이 회자되는 날이 있을것 같다. 연말 잘 보내 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