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만 출장을 마지막으로 출장이 중단되면서 3년만에 싱가포르에 출장을 왔다. 코로나 이후 출국이라 새로움을 느낄것 같았지만 기계적으로 공항에 가서 출국했다. 평소보다 붐비지 않다는 것 외에는 대부분 예전과 비슷하더라.
10년 전에 여행으로 잠시 왔었던 싱가포르에 대한 기억은 Sentosa 해변과 Orchard 거리 뿐이다. 일정이 짧기도 했고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나조차도 어떤걸 즐기고 싶었는지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었다.
이번은 8일이라는 꽤 긴 일정으로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스타트업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자’라는 강박이 생긴탓인지..간단한 네 가지 원칙을 정했다.
- 출장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는 되도록 조깅을 할 것.
-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할때는 되도록 걸을 것.
- 숙소에 돌아온 이후에는 밖을 돌아다니면서 해외에서의 시간을 만끽할 것.
- 유명한 관광지나 음식점을 뽀개는데 집착하지 말 것.
결과적으로 귀국 하루 전인 오늘, 4가지 원칙은 꽤 잘 지켜졌다고 자평한다. 덕분에 10년 전에 별 생각없이 여행했을때 보다 많은것을 얻어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와는 다른 풍경에서 조깅을 하며 성취감을 느꼈고, 많이 걸으면서 잊지못할 추억들을 만들었고 싱가포르 현지의 색다른 모습을 겉으로나마 알아갈 수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나 음식점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니 음식도 더 맛있더라! 주말에도 조급하지 않고 로컬 카페에서 몇가지 일을 타다닥 처리하며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뜻밖의 맛있는 음식과 추억들을 쌓아 행복했다.
싱가포르에서 느낀 주요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 물가 수준은 한국보다 살짝 높은 듯하다. (현재 싱가포르 달러가 강세인 이유도 있음)
- 특히 생맥주는 너무 비싸다. Happy Hour 시간대에도 1잔 (500ml)에 1만원 (10 SGD)은 거뜬히 넘는다. 다행히 한국보다 훨씬 맛있었다.
-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도 한국보다 살짝 비싸다. (5 SGD)
- 고급스러운 영어를 사용한다.
- 가장 눈에 띄었던 예는 -Watch your step 이 아닌 Mind your step으로 표기한다는 것.
- 악센트가 있는 동남아 영어를 낮추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싱가포르 영어의 고급스러운 면들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 카페에서 일하는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일할 수는 있다.
- 카페는 파스타 등을 먹으며 식사 하고 수다를 떠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강한 것 같다. 그럼에도 밥먹으면서 노트북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 스타벅스에서도 콘센트(outlet)가 없을때도 있다. 그럼에도 충분히 노트북 가져가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이긴 하다. 스타벅스는 와이파이도 준비되어 있다.
- 가끔 어떤 카페들은 와이파이를 일반 손님들에게 제공하지 않아서 테더링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주류는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고, 주류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다.
- 위스키/와인 리스트는 한국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스파클링 와인이 하우스로 준비되어있는 곳이 많았던게 기억에 남는다.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도 프로세코가 보편화 되어있다. (스파클링 와인이 더 좋아졌다!)
- 칵테일 종류도 한국보다는 훨씬 다양하다. 술을 먹지 않는 무슬림을 위해 Mocktail (무알콜 칵테일)을 서빙하는 곳이 많았다.
- 한국 소주(soju)를 파는 곳도 많이 보였다. 한 병에 18 SGD 정도로 높게 평가 받고 있는 것 같았다.
- 평일에도 오후 이른 시간부터 Bar 에 맥주 한두잔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Happy Hour도 이런 문화 활성화에 영향을 준 듯.
- 디저트/케이크 전문 파티쉐리(Patisserie)가 일반 카페와 구분되어 있고 카페보다 일하기가 좋았다.
- 커피는 일반 카페와 가격이 비슷하다. 단, 디저트 가격이 비싸다. (하나에 10 SGD 이상)
- 개인적으로는 비싼 디저트 가격을 내더라도 인터넷 잘되고 콘센트가 구비된 파티쉐리에서 일하는게 훨씬 좋았다. 여기저기 붐비는 날이 많았던 주말엔 CBD 근처에 있는 KURA에 2번 정도 갔었다. (사람 많을땐 1시간 반 이용제한이 있음)
- 아메리카노, 콜드브루가 있어서 한국에서 즐기는 커피 생활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 맛도 똑같다! 단, 로컬 커피(Kopi) 보다는 2배 정도 비싸다.
- 스타벅스에서는 오늘의 커피도 있다(3 SGD 정도).
-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것은 맞다. 인종간의 소득 thin line 또한 보인다.
- 공용어 영어 안에서 화교, 인도인, 말레이시아 인, 서양인 (Caucasian)이 공존한다.
- 철저한 계획된 부유함 속에서도 인종들 안에서 소득 격차들이 보인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최저임금 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단순한 일을 하는 외국인들의 임금은 비교적 낮은 편이며, 금융 등 사무직에 종사하는 오리지널 싱가포르 인들의 소득은 1억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많다.
- 레트로가 여기도 유행이다. 단 중국을 기반으로 유행이라는 점이 차이점이다.
- 옛날 중국어 간판아래 힙한 브런치 가게나 바(bar)가 운영 중이다.
- 마오쩌둥 시대를 기반으로 한 레트로 바를 들를 기회가 있었다. 공산주의에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한국과는 정서가 다르다고 느꼈다. 마오쩌둥 초상화가 힙하게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숭배의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해당 시대를 표현한 미술 정도였고 공산주의에 대한 찬양은 아니었다.)
- 러닝하기엔 나쁘지 않다.
- 아침, 저녁으로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러닝이 어색한 문화는 아닌 듯 하다.
- 나같이 시원한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습한 더위 덕분에 평소 달리던 속도보다 현저히 느려질 수 있다.
- 숙소가 CBD 지역과 멀지 않아서 Merlion 까지 러닝으로 20분 정도면 당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러닝 좋아하시는 분들이 Merlion 근처로 러닝을 한다면 꽤 좋은 뷰를 즐기면서 신박한 러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추천하지 않고 평일에 러닝하기를 권한다)
여러일을 쳐내느라 시간이 많지 않았음에도 이번 출장이 유난히 꽉찬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경험했고 그동안 나만의 시각과 취향이 형성된 덕분인 것 같다. 짧았던 경험들이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조금씩 20대 때 보지 못한것들이 보인다. 40대 때 다시 오면 어떤 느낌일까, 코로나 전 20대 때 자주 갔던 대만을 지금 가면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