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많다. 그럼에도 어제의 감동을 잊어버릴까봐 블로그 정리를 최우선으로 시작한다. 이를 악물고…ㅎ.. 이 글을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다음 콘서트가 꼭 열렸으면 좋겠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중 한 명은 단연 김동률이다. 정말 좋아하게 된건 20살 초반 때였다. 감성이 풍부한 20대 때 소위 말하는 그의 ‘대작’들을 들으면 마음이 멍하니 울려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마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 같다. 그 때 좋아했던 감정은 이제 존경심으로 승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제 매일 뜨겁게 생각나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끊임없이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의 가사와 멜로디가 유난히 울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가사. 두번째는 그의 목소리. 그의 노래들은 평이한 단어들을 매우 적절하게 녹여낸 매력이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들이 콕콕 박힌다. 그는 뛰어난 가창력과 부드럽지만 과하지 않은 음색을 가졌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른 그의 노래는 아직까지 원곡보다는 와닿지 않는다. 오직 그의 색깔로 그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김동률, 이적 이후 이만큼 본인만의 깊은 색깔을 가지고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아티스트는 – 개인적으로 – 아직 나타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015년에 그의 콘서트를 처음으로 가보았다. 그 콘서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면 무반주로 마이크 없이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와 전체적인 실루엣이었다. 감동이 너무 컸어서인지 이번 콘서트에서도 내심 그 찰나를 기대했었지만 없었다…
이번은 내가 가는 두 번째 콘서트이다. 콘서트 소식은 알고 있었으나 왠지 티켓팅이 빡셀 거라는 생각과 함께 바쁜 현실이 겹쳐서 잊고 지내던 중 표가 구해졌다고 들었다. 그 때도 사실 갈까 말까 조금은 고민했었지만, 이 묵직한 문장에 바로 가기로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콘서트가 없을지도 몰라”
콘서트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예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었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 한번도 올림픽공원을 와 본적이 없다는게 신기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들이 불같은 아이돌 팬심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공연장에 도착한 것 같았다. 연령대도 흥미로웠다. 확실히 30/40/50대 들만 있다. 심지어 30대인 내가 다소 젊어보이는 상황.. 연령대를 제외한 구성은 다양해 보였다. 결혼한지 꽤 된 것 같아 보이는 부부들도 있고, 혼자 온 사람들도 있고, 동성끼리 온 사람들도 있다. 데뷔한지 30년이 된 아티스트이니까 그럴만도 하다 싶었다.
콘서트는 감동 그 자체였다. 첫번째 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훨씬 많고, 몇 번을 울 정도로 감정선을 더 잘 느낄 수 있었고(예전엔 울지 않았다..), 그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콘서트 시작 부분에는 정작 감동이 크지 않았다.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아이처럼’과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들을 수 있었다. 가장 크게 기대한 곡 중 하나인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원곡과 비교해서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노래를 부를때는 그는 감정이 넘치던 20대 였지만 지금은 50을 바라볼 정도로 원숙해졌기 때문에 원곡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콘서트가 진행되면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곡들에서 꽤 큰 임팩트가 있었다. 이때마다 그의 실루엣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었다. 그 중에서 거의 듣지 않았던 ‘오래된 노래’와 ‘replay’를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두 노래 각각 다른 이유로 좋았었다. ‘오래된 노래’를 들을 땐 몰입할때의 감정들이 너무 풍부하게 생각났다. 특히 기타 이외의 악기들이 거의 사용되지 않아서 그의 목소리가 매우 뚜렷하게 들렸다. 단어들을 들을때마다 마음이 복잡하고 뭉클해졌다.
‘replay’는 비교적 최근(그래도 10년이 넘었다…)에 나온 곡이라 자주 듣지는 않았다. 이번 콘서트에서 들었을때는 연륜이 생긴 그가 현 시점에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매우 먼 과거를 추억하고 성숙해진 다음 과거를 반추하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클래식과 다양한 악기를 활용한 것도 눈에 띈다. 다양한 악기가 몰입을 방해할 때도 있어서 조금 아쉽긴했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 세계가 더욱 풍부해지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오랜시간 축적된 그의 노력과 몰입이 아름다웠다.
최근에 발매한 ‘황금가면’은 색다르고 좋았다. 그가 댄스곡 비슷한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처럼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의 웃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좋은 거구나. 그가 계속 행복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다음 콘서트 때도 꼭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륜이 든 그의 모습에 세월을 속일 수는 없구나라는 아쉬움도 들었고, 콘서트 내내 게스트 없이 난이도 높은 곡을 혼자 하는 그가 체력적으로 버거워 보였다. 반면, ‘황금가면’ 무대에서는 그의 힘듦과 연륜보다는 즐거움을 더 느낄 수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김동률이라는 가수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감동적일까를 곱씹어본다. 그의 곡들을 듣는다고 해서 나의 과거들이 생각나는 건 아니다. 어떤 감정선들에 몰입하지만 과거 감정의 대상이 특정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김동률이 유일한 과거인 것 같은 느낌. 그와 오래 전에 헤어진것 같은 느낌. 완벽한 구남친이었던 그가 보내는 목소리를 오랫동안 듣는 느낌.. 이런 생각을 하다니 김동률님께 너무 죄송하다.
콘서트를 마치는 즈음에 그가 한 말이 아직도 깊게 남는다.
‘언젠가는 밀려나겠지만 밀려나는 시점을 점점 더 늦추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불안함을 원동력삼아 더 나은 스스로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맞다. 그는 정상에서도 불안을 느낀다. 1만 5천 명이 앉을 수 있는 콘서트 6회를 순식간에 매진시킨, 데뷔 30년에 가까웠지만 아직도 정상에 있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아티스트인데 그도 불안해 한다. 불안을 원동력으로 멈추지 않는 그의 음악적 고민과 노력을 존경한다. 그처럼 50살이 가까운 나이에도 타석에 설 수 있는,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될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 같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차가운 가을 바람을 느끼며 현실로 돌아왔다. 1~2시간 전의 상황이 꿈같았다. 지하철 역으로 오면서는 다음 콘서트를 기대하게 되었다. 나도 다시 만날 때 까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음 콘서트도 꼭 가야지. 콘서트 꼭 해 주세요!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