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으로 여행아닌 여행을 7일 정도 다녀왔다. 일을 처리할 것도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는 않아서 이왕 간 김에 휴가를 냈다. 회사는 의사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고 나의 불안 정도는 꽤 높았었다. 중요한 아젠다들부터 잡다한 일들까지 컨트롤 하지 못하는 느낌에 갑갑해했다.
미국 온다는 말을 듣고 동생은 바쁜 시간에 짬을 내어 줬다. 비록 긴시간은 아니었지만 맨하탄 지역과 브루클린을 같이 돌아다니면서 맛집 투어를 했다. 1박 2일 정도 같이 있게 되었는데 역시 식도락을 좋아하는 자매여서 인지 한 끼의 식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비용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동생도 미국에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서 나에게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도 사주더라. 동생이 대견했다. 먼 타지에서 10년 넘게 살고있는 씩씩한 동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남은 시간은 대부분 지인을 1:1로 만나거나 혼자서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미국에 오니 글로벌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다. 미국 교환학생에서 돌아올 때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언젠가는 다시 꿈을 펼쳐 보겠다 다짐했었지만 한국 생활에 찌들면서 포부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글로벌 고객이 100%인 스타트업을 한다면서 꿈이 작아진 스스로가 좀 부끄러웠다. 그 동안 많은 시간이 낭비된 것 같기도 했다.
물리적인 제약으로 인해 메일로만 뜸하게 연락을 주고 받았던 오래된 지인도 길게 만났다. 미국 생활때 만난 친구들은 어떤 일인지 뉴욕이나 주변에 자리를 잡아서 잘 살고 있었다. 그 중 한 친구는 정말 13년 만에 만났다. 그 친구는 내가 교환학생 때도 항상 같이 대화하고 싶었던 친구였었다.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데 매우 똑똑하고 생각에 깊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깨달음을 얻고 귀국했다.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매사에 걱정 따위는 없다. 그는 일어날 일은 일어날 거고, 걱정을 한다고 해서 결과가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모든걸 컨트롤할 필요가 없다라는 주의이다. 미국에 있을때 그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던 기억도 났다. 그에게 스스로를 많이 털어놓았다.
그는 대학생때의 내 모습은 세상 이것저것에 호기심 많은 다이너마이트 같았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연륜이 있다고 했다. 더이상 소리를 내면서 점프 하지 않는 다고 했다. (내가 점프를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그랬었구나 ㅎ) 그는 걱정이 깃들어있는 내 모습이 나이가 들면 당연하다고 하면서도 불안해 할필요는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의 예시를 들어 주었다. 미국 대통령도 사람인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지. 하지만 미국은 돌아가고 나름 장단 있게 운영은 되고 있다. 사람이면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핸들링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미국 보다 작은 크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 마음먹은 대로 될 것이고, 설령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된다.
정리해 보면 너무 정석같은 이야기이다. 나도 알고 있었던 일이고 블로그나 일기에도 수차례 썼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냥 지금 최선을 다하고 미래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그러면서도 실천이 많이 부족했었던 것 같다.
뉴욕 대부분의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나의 단점과 바닥도 더 들여다봤다. 친구를 만난 후엔 계획도 하지 않기로 했다. 대부분의 일들을 계획하던 모습도 버렸다. 타인이나 상황에 대해서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답답함이 한꺼번에 내려갔다. 맞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자. 그리고 결과는 받아들이자. 더 이상 기다리거나 전전긍긍하지 말자. 그리고 내 스스로를 받아들이자.
계획을 짜지 않고 작은 일에 집착하지 않으니 우연성 덕분에 생기는 잊지 못할 추억들도 많이 만들었다. 이렇게 디테일을 부여잡지 않으니 마음도 편하고 회사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계획이 없어도 맛있는건 확실히 많이 먹었다. 동생이랑 먹은것도 있고 화덕 피자, 멕시칸 푸드 등 셀 수 없이 많다. 동생과 이동할때는 주로 계획을 했었지만 그 후 아예 계획하지 않았다. 가고 싶은 지역만 정하고 거기서 먹고 싶은 걸 정했다. 그것도 즉석으로 정했다. 가게들이 많이 닫았으면 그냥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 갔다. 뭘 먹든 사람이 먹는건 맛있었다. 미국 샤도네이는 정말 맛있다. 한국에 들어오는 미국 샤도네이가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에 버터맛이 강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지에서 먹으니 그렇게 신선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뉴욕에서 다시 만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도쿄에서도 만났던 그녀를 뉴욕에서 우연히 일정이 겹처 만나게 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뉴욕 한복판에서 한국식 파인 다이닝과 맛있는 와인을 먹으면서 크트와 세상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수다를 떠는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휴식기간에도 나를 위해 항상 시간을 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국제적인 자연현상으로 인해서.. 직항임에도 불구하고 20시간이 걸렸다. 처음에 짐을 부칠때 이 상황을 설명 받았을땐 짜증이 많이 났었다. 도착해서 출근해야하는데.. 20시간을 비행기에 있어야 한다니. 난 왜 비즈니스를 탈 수 없는 환경인 걸까.
하지만 이내 친구와의 만남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맞아. 이것도 경험이지. 20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하고 명상하면 되겠다. 이번 뉴욕 여행에서 배운게 너무 많은데 오히려 회사 생각도 더 많이 하고 혼자 조용히 있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너무 신기했다. 금새 마음이 평온해 졌다.
물론 20시간 비행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회사에 갈 수 없어서 낸 연차 덕분에 중요한 미팅도 하고 일도 더 잘 정리했다.
너무 고마운 여행이었다.
더 단단해 진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