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시간을 스타트업에 몰입하면서 보낸 창업자나 대표들이라면 본인만의 스트레스 관리법이나 이에 대한 철학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스스로의 안녕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법을 본인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if not 무너져내릴수도 있다..)
회사와 스트레스의 크기는 비례한다.
무려 3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다. 우리 팀은 코로나로 힘겨운 2020년을 넘기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다음 펀딩 계획을 포함한 내년의 방향을 정리하고 있었다. 당시 크래프톤 김강석 대표님을 소개 받아 성공한 회사의 창업가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나누곤 했었다 (지금은 크리에이트립의 사외이사가 되셨다).
당시엔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불편한 자극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전전긍긍했다. 가끔 소화 가능한 범위 이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때는 사내 메신저를 확인하기 전 심호흡을 해야할 때도 있었다. 나는 스트레스 자체를 프로답게 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만 겪는 일인지 궁금해하며 메모까지 해갔던 질문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질문과 대답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나: 대표님 회사가 크면 스트레스의 크기는 커지나요?
김강석 대표님: 그럼요. 커지죠. 작아지진 않았던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 대부분의 대표나 창업자는 회사를 키우는게 인생의 1순위 목표다. 강석 대표님의 경험이 맞다면 회사 성공의 크기가 대표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다. 대표가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똑똑하게 노력하면 꽤 높은 확률로 회사는 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는 커진다.
믿고 싶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믿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묘한 느낌이 들때 직관을 믿는 편인데, 강석 대표님의 경험이 보편적일거라고 믿고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경험은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서든 맞았다. 회사 규모나 서비스 퍼포먼스가 증가하면 기쁨은 잠시, 스트레스는 다른 곳에서라도 반드시 증가했다.
스트레스는 불확실성(uncertainty)에 기반한다. 그리고 피할 수 없다.
회사가 성장하면 스트레스의 강도는 도대체 왜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당시 감당하고 있던 스트레스 레벨 이상으로 자극이 커지는 상황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 후 몇번의 산책을 통해 다음의 결론을 얻었다.
- 회사 규모나 서비스가 커지면 필연적으로 복잡성(엔트로피)이 증가한다.
- 따라서 대표나 창업자가 예측하거나 컨트롤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
- 결과적으로 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끊임없이 상대해야 한다.
- 대표나 창업자들은 천성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에 기반해 미래를 계획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런 통제력이 나에게 있지 않고 외부에서 오는 상황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된다.
회사가 성장하면 필연적으로 복잡도가 증가한다. 그 결과 대표나 경영진이 처리해야 하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커진다.
모든 해결책은 새로운 문제의 씨앗이다.
모든 해결책들은 반드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 머피의 법칙
Every solution breeds new problems.
2021년 말, 코로나로 인해 회사가 입은 타격은 역직구 비즈니스를 통해 어느정도 극복은 했고 펀딩도 4개월 만에 완성 시켰다. 회사도 크고 굵직한건 넘겼으니 이제는 당분간 큰 스트레스는 없을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외부에서 다양한 일들이 나를 자극했다. 리더급이 퇴사하는 일, 역직구 오퍼레이션 카오스, 신경쓰지 못한 분야의 자금 유출, 내가 생각하는 문화와는 반대방향으로 일어나는 실무단에서의 의사결정 등..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도 들었다.
오래 전 창업가가 특정 시점에 직간접적으로 둔 수는 새로운 분기점이 되어 다양한 결말의 씨앗이 된다. 예를 들어, 크리에이트립이 처음 역직구 서비스를 시작했을때 물류비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자체 서울 창고를 운영했었다. 그 결과 물량이 목표만큼 증가한 후엔 서울 창고가 오히려 비용 감축 장애물로 변질되었고, 팀원들의 애꿎은 시간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다.
*최근 엔트로피에 대한 글들을 많이 찾아본다. 새로운 해결책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복잡도가 증가하는 현상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어보고 싶다.
나에게 스트레스가 없다면 비정상이다.
스트레스의 근원인 불확실성, 그리고 불확실성을 유발하는 복잡성(엔트로피)은 결국엔 창업가가 만든 세계에서 발생한다. 그 불확실성마저도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만들었다. 결국 스트레스에 관한 생각은 뻔한 결말로 귀결된다.
그 어떤 불편한 자극도 받고 싶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많이 들어봄직한 이야기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었나. 오히려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 집착했다. 스스로 ‘나는 힘든 상황이야’, ‘나는 스타트업 대표야’라고 생각하며 따뜻한 위로라도 받기를 기대했었나보다. 어차피 스트레스의 모든 원인은 크리에이트립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나로 인해서 발생한 것임을 인정하지 못했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결론에 이른 이후 나는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와 우리 팀은 매일 문제를 해결하며 또 다른 불확실성을 만들어낸다.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이 불확실성은 다시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나는 또 길을 찾을 것이므로 이 모든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너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기로 했다.
상황과 거리두기, 그리고 타인과 연결하기
스트레스와 사이좋게 공존하기로 결심하면서 나만의 해소법들을 찾아 적용 중이다. 그 중 지금까지 잘 적용하고 있는 두 가지 내용을 소개한다.
상황과 거리두기
예전 같았으면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바로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을 바로 삼키지 않고 거리를 둔다.
- 상황을 인지한 시점에서 3시간 내에 미팅이 있다면 취소하거나 연기한다.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정은 위험하다.
-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주변의 카페에 가서 라떼를 주문하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는다. 노트북은 가져가지 않는다.
- 1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서 상황을 소화한 이후 발생한 이유를 가볍게 되돌아본다. 역시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발생했을것이다. 원인이 나에 있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타인과 연결하기
그 후 친하든 어색한사이든 나와 연결된 대표들을 천천히 떠올린다. 그들이 힘들때 나에게 보냈던 메세지나, 혹은 내가 힘들때 쏟아 놓은 메세지에 대해 꾹꾹 눌러 답장한 조언들을 핸드폰에서 다시 꺼낸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상황은 없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비슷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겪는게 나 혼자만이 아님을 알게되면 알다가도 모를 힘이 생긴다. 그들도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 해냈을 것이기 때문. 힘들어도 피하지 않고 뿌리 부터 해결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눈뜨자마자 이 문장을 되뇌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Just do it
블로그 있었다는거 왜 말 안함 ㅋㅋ 글이 깊어서 달라보이는데. 엔트로피에 대해서 할말이 너무 많았지 우리.ㅋㅋ 힘들때 톡해
새 글이다!
그래도 스스로를 너무 탓하지는 말자
머야 왤케 멋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