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상이 한꺼번에 달라졌다. 혼자인 시간이 많아졌다. 그만 힘들겠다고 종지부를 찍었지만 파장은 남아있다. 주말엔 마음이 괜찮다가도 싱숭생숭해진다. 옛날 힘들었지만 극복했던 기억들을 기록한 일기들을 뒤적거렸다. 들여다보기 전 많은 심호흡이 필요했다. 그 중 창업 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고 극복한 사건을 정리해본다. 나중에 크리에이트립이 성공한다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나는 어렸을때부터 스스로의 강점을 잘 알고 있다. 타인 앞에서 말하는게 어렵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신있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대부분의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다는걸. 스스로를 증명하는걸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만약 내가 조용하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작년 10월 경 타운홀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꾸역꾸역 마무리는 했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이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나는 어디간건지…? 마음이 허공을 떠다녔다.
다음 타운홀 전까지 발표자리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꽤 많이 있었다. 아무 스트레스없이 잘 이야기했다. 타운홀에서 메세지를 전달하기 어려웠다는걸 나조차도 믿지 못할 정도. 그렇게 10월이 너무 잘 흘러갔다. 일단 다음 타운홀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11월에도 문제를 겪다
11월 타운홀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슬슬 지난 달의 상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번 뿐이었으니까 잘 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과 함께 내가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기도 했다. 걱정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준비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새벽 두시까지 대본 비스무리 한걸 쓰고 잠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나는 발표를 원래 준비하는 사람이 아닌데? 심지어 IR조차 대본은 없었었다.
타운홀은 시작되었다. 내 차례는 평소처럼 지난달 실적을 공유하는자리였고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나는 다시 긴장하고 있었다. 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타운홀이 끝나고 나와 오래 일한 팀원들은 나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생긴것은 아닌지 물었다. 그들에게도 내가 말을 잘 못하는 상황이 뜻밖이었던것 같다. 몇몇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다 잘 극복할 거라고 너가 말을 잘 해서 그렇지 원래 말은 잘 안나오는거라고 말해주었다. 답답했다. 나는 정말 말할때 자신있는 사람인데, 잘 못할수가 없는데..
해결해보자..
몇일간 집중이 잘 안되고 오후엔 심장이 쿵쿵 뛰는 상황이 계속됐다. 30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어서인지 창업 이후 몇 번 없는 충격이었다. 마치 달리기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고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인것과 같다. 자다가도 3시에 반드시 깨곤 했다. 대학교때 잠깐 폈던 담배도 생각났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던게 확실하다.
나보다 회사를 더 키운 대표 지인들을 따로 만나 상황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고 그들은 위로와 해결책, 그리고 유머를 동시에 주었다. 대표들은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한 대표는 삼겹살과 소주를 왕창 사주었고 스스로 자신감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비밀 메모를 보내주기도 했다. 한 대표는 자기도 그런 현상이 있어서 타운홀을 비대면으로 바꿨다는 농담도 해주었다..ㅋㅋㅋ (둘이서 크게 웃었었다. 아직도 너무 고맙다 ㅋㅋ) 투자사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들 너무너무 고마워.
그들의 조언은 확실히 자신감을 주었다.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것 같았다. 정신과도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몇가지 진단을 하더니 인생에서 몇 번씩은 겪는 일이고 우울증과 같은 이슈는 없다고 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 상태가 계속 되거나 어쩔 수 없이 긴급한 상황에 먹을 수 있는 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중독되는 건 아니라는 말과 함께.. 병리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하니 한결 더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타운홀 날짜가 다가오자 불안감과 답답함이 엄습했다. 다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까 싶었지만 바닥까지 내려갈것 같아 참았다. 창피하기도 했다. 서랍에 넣어둔 안정제를 먹었다.
놀랍게도 10분 안에 바로 불안상태가 리셋됐다. 심장은 더이상 쿵쾅거리지 않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갔다. 집중도 잘 되는것 같았다. 막 대학교 입학했을때 아무 고민이 없던 상태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한두시간 집중을 끝내고 산책을 하다가 생각이 차츰 전환되었다. 마치 안은 썩어있는데 표면만 덮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마음은 편했지만 불편했다. 갑자기 약효가 떨어질 상황이 무서워졌다. 중독되면 어쩌지?
그 길로 사무실에 돌아와 처방받은 안정제를 다 버렸다. 그러면서도 출구 없는 “자아 되찾기” 문제를 붙잡고 있는것 같아 아득했다. 친구에게 전화해 창업 후 처음으로 한참을 펑펑 울었다. 창업한 이후 잊을 수 없는 날을 몇개 꼽으라면 바로 이 순간 일 것 같다.
문제와 마주하다
반포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현상에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을 알고 싶었다. 분명히 회사에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 미팅이나 발표는 무리가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문제들이 머리 속에서 터져 나왔다. 문제를 마주하기로 했다.
당시 직구 팀이 아닌 팀원들과 나의 사이가 붕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이 느낌이 쉽게 지워지지 않아 평소 조언을 구하는 멘토 분들과도 이야기를 해왔었다. 타운홀 때 나를 바라보던 몇몇 팀원들의 의구심 가득한 눈빛, 노트북을 켜고 일하던 모습 등이 생각났다. 그 때마다 불안했었다. 어쩌면 타운홀 때 그들의 눈빛이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여느 여행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크리에이트립 또한 코로나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겪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역직구의 실적은 매우 중요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규 서비스가 자리를 잡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을 갈아넣었었다. 그래도 매일 텐션이 좋았다. 내가 인풋을 넣으면 서비스가 크는걸 보면서 스스로의 효능감이 높아졌다. 성공에 대한 절박함과 괜찮은 실적이 맞물려가는 상황에 중독되다시피 했고 실무에 몰입했다.
어느 새 팀은 1.5배 정도 커 있었지만 대부분의 팀원들과 거리감이 있었다. 회사는 40명 남짓 규모였지만 난 절반 이상의 팀원들이 몰입하고 있는지, 지금 크리에이트립에서의 일을 즐거워 하는지 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서 설명할 기회들이 있었지만 직구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쳤고 실적에 대해서도 직구팀 외에는 공유하지 않았다. 3개월간 말한마디 해보지 못한 팀원도 많았다.
코로나가 걷힐 무렵 9월에 다시 타운홀을 시작했는데, 그 공백은 2년 정도나 되었다. 특히 프로덕트 조직과의 간극이 심했다.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근거를 공유하지 않으니 엔지니어들이 특히 많이 지쳤다. 해당 팀원들은 나와 100% 잘 맞는 성향이 아니기도 했다. 그래서 불편했었나보다. 언제부턴가 특정 팀원들과의 대화가 어려워진 것을 느꼈다. 타운홀 때 그들의 의구심 가득한 눈빛들이 떠올랐다. 내가 무엇보다 사랑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회사의 방향도, 나의 생각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내가 하기 싫었던 일
뒤돌아보면 타운홀이나 숫자 공유, 그리고 팀원들과의 솔직한 리뷰가 직구 서비스에 관련한 일보다 훨씬 하기 싫었다. 맞다. 중요한데 그냥 하기 싫었던 것이다. 직구 실무를 내가 하는게 더 재미있었기 때문에 실무에 몰입했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서비스를 맡은게 회사에 최선이었는지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앞으로만 달렸다. 나는 해야할 일을 미루고 있었다. 체력을 쓰는 일은 쉽다. 머리를 쓰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나는 힘든 일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크기에 맞는 그릇을 키우지 못했었다.
12월의 타운홀
그 날 이후 생각이 조금은 말끔해졌다.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문을 닫아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불만이 쌓인 그룹이 형성되어 있기도 했다. 이 상황이 될 때까지 규희를 혼자 둔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최근 규희가 화가 많았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의 문을 닫은 팀원들은 결국 좋은 기회를 얻어 이직했다. 어쩔수 었었다. 리더들이나 챙겨야할 팀원들과 개별적으로 이야기도 다시 시작했다. 그래. 우리 팀원들이 생각이 훨씬 깊었구나. 그동안 고생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릇을 키울 시기를 놓쳤다는 사실에 괴롭기도 했다.
12월의 타운홀은 송년회로 진행되었다. 역시나 지난 2022년을 돌아보니 나는 너무 부족했었다. 대표로서 무언가를 해냈는지 돌이켜보면 별로 한 일도, 성과도 없었다. 오히려 팀은 뾰족해지기보다 뭉툭해졌고 방향감각을 잃었다. 송년회때 나는 내년 방향을 팀 전체에게 공유하고 스스로에 대한 회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팀원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송년회 전날 새벽까지 같이 작업해준 신사업 팀 리더, 발표 내용을 들어준다고 같이 야근해주던 CX 리더, 그리고 송년회를 갈리면서 준비했던 피플팀들에게도 고마웠다. 뭉클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송년회를 준비했었다.
12월 타운홀에서는 안정제도, 대본도 없었다. 왠지 못할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2022년에 많이 부족했었지만 문제의 뿌리를 알게되어서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믿었던 대로 송년회는 잘 끝났다. 나답게 말도 잘 했다. 팀원들도 오랜만에 열린 송년회에 즐거워했고 맛있는것도 많이 먹었다. 잠을 거의 두시간정도 밖에 못 잤지만 그들의 웃는 모습을 뒤에서 보니 뿌듯하고 미안했다. 스스로도 아직 많은걸 해결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2023년을 위한 다짐
송년회가 끝난 후 완전 녹초가 되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택시에 탔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상행선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다짐했다. 절대, 절대,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해야할 걸 늦지 않게 하겠다고.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내가 준것도 없지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이 사뭇 고마웠다. 크리에이트립 진짜 잘 되어야지!
전에 사이먼 시넥 동영상 추천해 줬잖아
거기 나온 문장 중 하나가 don’t deny me the opportunity to be there with you 인데
정작 너는 그렇게 못하고 있다
힘들땐 연락해 너 정말 강해
마장동 가자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