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은 나에게 중요하다. 엄마는 나에게 “맛없는건 되도록 먹지 않는다”라는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이 철학은 어렸을때 덩치가 컸던 내가 배가 불러도 계속 먹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식사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의도였다. 먹는것이 그 어떤것보다 중요했던 당시의 임혜민에겐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난 계속 먹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가르침은 내가 “되도록 맛있는 것만 먹자”라는 습관을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고 기준도 엄격한 음식 카테고리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멕시칸 음식이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이 멕시칸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멕시칸 음식을 접하다
10년도 더 된 미국 교환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때 만나던 남자친구가 미국의 대중 식문화를 많이 알려주었다. 난 그 중 멕시칸 음식을 특히 좋아했다. 내가 있던 곳은 미국에서도 시골인 오하이오 주의 작은 대학교 캠퍼스 마을이었는데 멕시칸 음식이 많이 있었다. 난 그 음식을 글자 그래도 사랑한다(literally loving it)는 표현을 자주 썼다. 너무 자주써서 의미가 퇴색될 정도였다. 미국 생활이 6개월 정도에 접어들 무렵엔 눈만 뜨면 부리또 혹은 부리또 보울을 찾았다. 차타고 이동할때는 돌돌 말린 부리또가 좋았고 잔디밭에 앉아서 쉴때는 부리또 보울이 좋았다. 균형잡힌 영양소에 낮에는 탄산 음료, 저녁에는 맥주랑 잘 어울리던 이 음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생의 가벼운 주머니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도 좋았다.
귀국 후에 제대로 된 멕시칸 음식점을 찾아헤멨으나 당시 서울에서는 찾기가 어려웠다. 미식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던 탓에 직접 하려는 생각도 했었다. 미국의 유명 멕시칸 프랜차이즈 치폴레(Chipotle) CEO에게 메일을 보내 한국에도 맛있는 음식을 전파할 수 있도록 판매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한낱 대학생이고 제안하는 방법도 몰랐던 나의 메일에 그가 답장을 했을리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특징을 대부분 갖추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는 멕시칸 음식.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 하나하나의 이유를 찾아본다.
국물이 없다
배가 많이 부른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이 둔한 느낌도 들고 소화도 잘 되지 않을 뿐더러, 어렸을때의 통통했던 몸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국물이 든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이 쉽게 오는데 (엄연히 맥주에서 오는 포만감과는 다르다) 멕시칸 음식은 국물이 없어서 좋다.
탄산을 가진 그 어떤 음료와도 잘 어울린다
나처럼 선택에 대한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마리아주를 가진 음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삼겹살을 먹고싶다면 그 날은 소주도 한잔 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맥주를 먹고 싶은 것이라면 삼겹살을 먹지 않고 치킨이나 다른 종류의 음식을 찾는다.
멕시칸 음식은 내가 상황에 관계없이 즐겨 마시는 탄산음료 류 (맥주, 제로콜라, 탄산수 등)와 잘 어울린다. 때문에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쉬고 싶을때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멕시칸 음식을 선택하곤 한다.
매콤하다
많이 매운건 누구나 부담스러워하겠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적당한 매콤함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몸이 잘 붓는 체질을 갖고 있어 짜지 않은 매콤함을 선호하는 편인데, 한국 음식은 보통 국물로 매콤한 맛을 내기 때문에 매콤하면 소금기가 많은 경향이 있다. 멕시칸 음식은 한국 음식과는 다르게 살사 소스나 할라피뇨 등으로 매콤한 맛을 내기 때문에 내 체질이나 성향에 잘 맞는다. (물론 감자탕 같은 한국음식도 좋아하지만 몸이 부으면 다음날 불편하기 때문에 점점 피하게 되었다..)
튀김류가 있다
난 튀김류를 매우 매우 좋아한다. 떡볶이 보다는 튀김이 좋고, 짜장면 보다는 같이 먹는 탕수육이 좋다. 그리고 꿔바로우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나쵸가 들어간 멕시코 음식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마음
시간은 흘러 한국 요식업의 카테고리가 다채로워졌다. 나에게 그 때 그 시절의 멕시칸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이제는 해외에 가지 않고서도 다양한 지역의 음식을 본연의 맛으로 즐길 수 있다.
내 취향대로 부리또 보울에 사워크림을 듬뿍 넣을수도 있고 살사의 양을 더 맵게 조절할 수도 있다. 물론, 살사 소스는 그 때 미국에서 먹었던 맛 그대로다. 부리또의 과카몰리도 동일한 맛을 낸다. 나쵸도 마찬가지다. 튀김이며 소금의 양까지 동일하다. 대학생때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내 모습과 그 어떤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찾을 수 없는 멕시칸 음식이 많이 닮아있다.
멕시칸 음식을 한창 먹었던 대학생 때보다 취향도 살짝 변했다. 그 때는 맥주 보다는 탄산음료와 같이 먹는게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맥주가 가장 좋은 페어링이다. 아마 그 때는 점심으로 멕시칸 음식을 자주 먹었지만 지금은 빡센 일과를 끝내고 혼자 먹는게 대부분이라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좋은 멕시칸 음식에 라거 생맥주 한 잔은 큰 행운이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음식을 발견하고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건 인생에서 누릴 수 없는 몇 안되는 소중한 기회이다. 앞으로 어떤 음식들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멕시칸 음식 처럼 오랫동안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음식을 한두개쯤은 더 알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언젠간 이 이야기가 올라올 줄 알았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