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한 번도 가보지 못할 것 같았던 아랍에미레이트에 다녀왔다. 미국에서 만나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파키스탄 친구가 두바이에 가보라고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다행히 두바이도 잠깐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친구는 한국인인 내가 두바이에 갔다는 사실이 기쁜 나머지 후기를 남기라는 메일 폭탄을 보내댔다..) 몇 일 다녀와서 아랍을 이해했다고 말하기엔 너무 쪼렙이고, 짧게나마 다녀온 소회를 남겨 본다.
대원칙
너무 바쁘게 출국해 딱히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출국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일정을 꽉꽉 채워야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흐르는 대로 시간을 보내자라고 다짐했다.
… 하지만 가방에 운동복을 꽉꽉 채워넣었던걸 보면 운동은 매일 하려고 이미 작정했었던것 같다..ㅋㅋ
느낀점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매우 다르다
두바이를 제외하고는 아직 개방이 많이 되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아부다비는 미국의 D.C. 같은 느낌이고 두바이는 뉴욕 같다. 아부다비는 수도로서 전통을 지키고 있고 두바이는 압도적으로 외국인 비율이 높다. 이 두 도시가 다른점들은 아래 글에 조금 더 작성해 놓았다.
식문화
음식의 맛과 식문화가 매우 다르다.
전통 음식점에서는 식사를 거의 다 남겼다. 글로벌 식문화를 다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현지 사람들이 자주 가는 별점 좋은 로컬 음식점에 방문했었는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크게 와닿았다.
- 밥을 매우 큰 그릇에 먹는다. 밥을 정말 정말 많이 먹는다.
- (실제로) 손으로 식사하고 고기도 손으로 먹는다. 대신 손을 매우 깨끗이 씻는다.
- 한국 정서와는 거리가 먼 향신료가 가득한 음식을 먹는다.
두바이를 제외하고는 아직 새로운 식문화가 들어온 시점이 매우 짧다.
이제 막 식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타이밍이라 다른 문화의 음식들(특히 술)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술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국가라서 이해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술을 팔지 않았고 논 알콜 모히또나 (맛있었다) 논 알콜 맥주만 판매하고 있었다. 나같은 쪼렙이 와인 리스트를 보거나 기본 칵테일을 주문해 먹어봐도 한국에서의 깊이는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와인이나 칵테일이 이제 유입되기 시작한것 같아 신기했다.
반면, 두바이에서는 내 생애 가장 맛있는 맥주를 경험했을 정도로 미식의 도시였다. 그렇게 맛있는 칼스버그 생맥주를 먹어본 적이 없다. 부자가 되면 별장을 하나 얻고 맥주 먹고 싶을때마다 오고 싶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두바이에서 많은 식사를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구석구석 다녀보면 맛있는게 많을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경제
아부다비는 물가가 한국보다 비싸고, 두바이는 비슷하거나 저렴하다.
아부다비는 두바이보다 인구 밀도가 훨씬 낮은데 거의 모든것이 한국이나 두바이보다 비쌌다. 붐벼야 될 것 같은 쇼핑센터 등 대부분의 대중 건물들이 텅 비어있지만 아이러니하게 화려했다. 오일 머니로 경제를 계속 부양하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부다비의 현지인들은 대부분 부유한 기운을 풍겼다. 그들의 기운을 느끼며 비싼 물가를 현지인들이 감당하는 건 어렵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들은 큼직한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기괴한 경제라는 느낌도 들었다. 심지어 주차도 공항을 제외하곤 100% 무료인데, 어디서 수익을 창출하는지 알 수 없었다.
커피도 여지없이 한국보다 10~20%는 비쌌다. 예외가 있다면 숙소였다. 숙소는 외국인들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였는지 가격대비 퀄리티가 매우 좋았다.
두바이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저렴했다. 두바이 중심 시내에서 맥주나 샌드위치, 각종 음식들을 먹었었는데 서울보다 5~10% 저렴하거나 비슷했다. (다시 먹고 싶다..ㅎ) 전반적으로 외국인이 지내기 좋은 곳은 두바이가 아닐까 싶다.
문화
한국문화가 메인스트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연일 중동에서 K-관련 콘텐츠가 인기라고 하지만 현지에서 느꼈을땐 아니었다. 두바이에서 아주 간간이 K-pop이 들리고 몇몇 마주친 사람들이 K-드라마를 자주 본다고 이야기했었지만 누구나 한국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문화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K-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그 수가 적지 않게 느껴졌지만 현지인 보다는 현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지인들은 남성이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대한 공감대가 많이 떨어져 보였다. 대만이나 일본과는 한국에 대한 이해나 온도가 확실히 달랐다.
누구나 영어를 한다.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비즈니스와 일상에 영어가 깊게 침투해 있다고 느꼈다. 표지판의 영어도 자연스러웠다.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쓰는 영어가 많이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예: 엘레베이터를 lift 라고 표현)
안전하다.
두바이, 아부다비 둘 다 매우 안전하다고 느꼈다. 길거리 부랑자도 없고 한국만큼 안전한 곳이었다. 다만 아부다비의 경우 도시는 널찍한데 사람은 많지 않아서 오래 있으려면 운전을 해야 밤에 조금 덜 무서울 것 같았다. 두바이의 경우 사람들이 잠을 잘 안자고 밤늦게까지 놀고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밤문화도 발달되어있고 어딜 가나 신이 났다.
운전은 어렵지 않다.
전반적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차량도 꽤 있는 편이고 차선의 너비도 한국만큼 좁은 편이라고 느껴졌다. 도로가 직선이 많아서 자주 내비게이션을 볼 필요가 없었던게 좋았다. 적응이 좀 필요하긴 했다. 제한속도 표지판이 한국보다 듬성듬성 나와 자칫하면 과속하기 쉬웠다(비겁한 변명..). 차선 변경을 요구할때 차의 뒤에 딱 붙는 차량이 한국보다 훨씬 많았는데, 이건 개인적으로도 다른 차량을 배려하지 않는 운전습관이라고 생각해 볼때마다 많이 불편했다.
전통 옷을 입은 사람이 많다.
현지인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전통 옷을 입은 사람이 많았다. 남성의 경우 하얗고 긴 옷을 많이 입는데, 신발이나 모자가 다양한게 흥미로웠다. 같은 복장인데 악세사리가 다르다니! 샌들의 모양도 다양했고 모자는 전통 삿갓(?)을 쓴 사람도 있고 현대식 캡 모자를 쓴 사람도 있어서 신기했다. 나름 전통을 재치있게 해석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타
바다가 예쁘다.
바다 위의 사막에 생긴 도시들이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멀리서만 운전하면서, 숙소에서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고향을 떠올리게 해주는 풍경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시원하다.
햇빛이 뜨거울 땐 정말 뜨겁지만 건조해서 오전이나 늦은 오후부터는 어렵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미국 서부 생각이 많이 났다.
마무리하며
전반적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평소 소위 말하는 ‘동양’ 혹은 미국만 방문하다가 이해도가 0인 곳에 다녀와보니 세상은 넓고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이 많은데 가는곳만 가봤다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