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이과’로 분류되는 과목들에 크게 흥미가 없었던 나에게 문과적 지식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생물은 꽤 재미있는 과목이었다. 어렸을때 허리 질환으로 몇 번 병원에 다니면서 생물 과목을 통해 나의 유전/생물학적 결함(?)들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때문에 흥미를 느꼈던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사회에 나와서도 가끔 유전에 관한 책이나 콘텐츠를 종종 소비한다. 그 중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내용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덕분이었는지 유튜브는 난데 없이 세기의 과학 논쟁 영상을 추천해 주었다. 리처드 도킨스 선생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영상을 클릭했는데, 한동안 이 영상의 내용을 곱씹게 되었다.
내가 파악한 논쟁의 핵심은 의지와 환경이 진화나 유전 과정 자체에 변화를 줄 수 있는지이다. 과학적인 분야에서 ‘의지치’에 관한 토론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이런 고퀄리티의 토론을 이해하고 되짚어 보기엔 기본기가 너무 부족했다. 특히 영상에 출연한 데니스 노블 교수와 그의 이론에 대해서 아는것이 너무 없었다(심지어 데니스 노블은 리처드 도킨스의 스승이라고 한다). 그 후 주말에 짬이 난다면 이들의 이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기로 했다.
결정론 vs 변화론
결정론) 리처드 도킨스는 물려 받은 유전자에 의해 진화가 결정된다고 본다. 내가 유전자 A,B,C,D를 물려받았다면 나는 이 유전자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 그대로 나타날 것이고 이건 돌이키거나 변형될 수 없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는 내 유전자들의 반쪽을 그대로 물려 받을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기적 유전자>나 <지상 최대의 쇼> 책에서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변화론) 데니스 노블은 물려 받은 유전자에 의해 진화가 100% 결정되진 않는다고 본다. 내가 유전자 A,B,C,D를 물려받았어도 자라난 환경에 의해서 C라는 유전자의 특징이 감소할 수도 있으며 나의 아이는 C의 특징을 온전히 갖고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운동을 예를 들어보면, 내가 운동 능력에 관한 유전자는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운동을 열심히 해서 운동을 잘하게 되었다고 치자. 그 이후 내 아이는 실제로 어느정도 운동 능력이 나의 어린시절보다는 향상되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는 생물의 종합적인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환경과 유전자가 상호작용 한다고 생각한다. 즉, 살면서 획득된 특성 또한 유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정론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상대성 이론이며, 변화론은 아직은 오픈결말이고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양자 역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변화론이 더 좋다
개인적으로는 결정론 보다 변화론에 훨씬 더 마음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론은 멘델부터 다윈,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구자료와 사례가 있다. 반면 변화론에 대한 근거는 양적으로 풍성하지 않다. 생물이 (특히 인류가) 진화하는 인터벌이 매우 길기 때문에 앞으로 검증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컴퓨팅으로도 가능할것 같기도하다..)
변화론은 살아온 궤적들이 유전적 결함을 충분히 극복할 만한 것들이었다면, 내 후손들이 점점 더 ‘유전적으로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준다. 반면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이 좋은 특질들을 쇠퇴시키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갔다면 후손들의 삶이 나을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데니스 노블의 이론은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직은 이론이라기 보다는 의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로 해석하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 환경에 따라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기대수명이 달라지는 사회 현상이 잘 설명된다.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기 때문에 물려받은 유전자보다는 환경과 노력이 후손의 행복에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심플하게 해석해 볼 수 있다.
제이컵을 위하여 (Defending Jacob)
1년 전 쯤 재미있게 봤던 Apple TV의 ‘제이컵을 위하여(Defending Jacob)’도 떠올랐다. 앤디의 아들 제이컵의 학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 너무 착해보이는 아들 제이컵이 유력한 용의자로 꼽히게 된다. 이 때 제이컵이 범인인지를 추측하기 위해서 그가 선천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유전자를 보유했는지 등의 논란들이 나온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스포 방지를 위해 더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실제로 우울증, 폭력성 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 또한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도 높은 확률로 유전된다. 통계처럼 모든 인구의 5%가 이런 인자들을 갖고 있어서 발현이 된다고 믿는다면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어두웠을 것이다. 이런 인자를 갖고 있는 인구집단을 사회에서 격리하고, 좋은 인자를 갖고있는 집단을 집중 육성하는 우성학과 결정론적인 사회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인자들이 유전된 모든 사람에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환경에 따라 발현될 수도 있고, 아예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변화론이 맞다면 이런 인자들의 발현을 제어하는 기제들이 전수되고 부정적인 유전 인자의 영향이 서서히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변화론이 맞아야 하지 않을까..?
바꿀 수 없는 부분(유전학적 형질)과 바꿀 수 있는 부분(후천적인 환경과 노력)의 조합이 지금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까지 변화해온 나는 변화된(?)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을 작정이지만 긍정적인 노력으로 결핍을 극복한 사람들의 유전자가 더 많이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때아닌 과학 영상을 접하게 되어 생각을 전환할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 두 과학자의 토론을 꾸준히 팔로업해야겠다.
제이콥을 위하여 꿀잼 ㅋㅋ 누나도 봤구나
나도 저 두 학자 논쟁 최근에 어디서 썸네일만 본거 같은데 봐바야게써
좋은 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