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오면서 주말 루틴이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오늘은 주말의 루틴 그리고 이 루틴에서 오는 행복들을 적어본다.
평소 운동을 다니는 곳이 매우 가까워졌다. 도보 거리로 40분 정도 걸려서 지하철을 타야 하나, 퀵보드를 타야하나, 아니면 그냥 걸어가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할 정도로 가깝다. 예전에 차를 타고 다녔던걸 생각하면 매우 큰 변화다.
운동을 다니는 곳이 가까워졌다 보니 주말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운동에 더욱 자주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침 일찍 운동이 가끔 부담스럽더라도 갔다와서 집에서나 회사에서 조금 쉬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서 운동 수업을 듣는다. 잠이 살짝 덜깨서 맞는 찬바람도 기분이 좋고 운동 중간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신선하다.
운동에서 돌아올때는 걷거나 지하철을 탄다. 뭔가를 먹고 싶을 때는 지하철을 타는데, 지하철 타면서 배달을 시켜 놓으면 씻고 나왔을 때 맛있는 음식이 배달되어 있는게 좋다. 지하철 안에서는 뭘 먹고싶은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한다. 브런치를 먹고 싶을 때도 있고, 김치찌개를 먹고 싶을 때도 있다. 몇가지 좋아하는 옵션들이 있는데 아예 다른 걸 먹을 때도 있다. 모든 선택지는 나름의 기쁨을 준다.
빡센 운동에서 돌아온 뒤엔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몸을 건조하지 않게 관리한다. 평일엔 시간이 많지 않아 바디로션을 간신히 바르고 나오지만, 주말엔 평일보다 매우 천천히 많은 양을 바른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향이 들어있는 스킨 로션을 천천히, 열심히 바른다.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 중 하나인 ‘심플하게 산다’를 떠올리면서 몸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다 보면 음식이 도착한다. 주말 낮에는 집에서 밥을 해먹기보다는 시켜먹는게 좋다. 거의 해먹지도 않지만… ㅎㅎ 몸이 다 풀린 상태에서 맛있게 먹는 식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음식을 가져다가 거실 책상에 조용히 앉는다. 운동을 다녀오면 빠르면 아침 10시, 늦으면 낮 12시 정도 된다. 이 타이밍엔 햇살이 거실 안으로 길게 들어온다. 겨울이 다 되가는 시기라 햇빛이 길게 들어오는게 유난히 반갑다. 식사를 하기 전엔 보통 매우 기분이 좋은 나머지 음식의 사진을 찍곤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사진을 공유해 놓는다. 나 짱이지. 맛잇겠지. ㅎㅎ 그 후엔 컴퓨터도 키지 않고, 핸드폰도 엎어 놓고 천천히 음식을 먹는다.
식사를 다 한 후에는 집 냉장고를 뒤적거려서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렛 따위를 꺼낸다. 그리고 집 앞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해 온 커피와 같이 먹는다. 커피를 이 때 다 마시진 않고 방에 들어가서 영어 숙제를 하면서 마시기 위해 남겨 놓는다. 디저트는 많이 먹기 보다는 혈당이 오르는 기분이 들때까지만 먹는다. (많이 먹는 건가?)
그 후 집을 정리한다. 설거지도 평소보다 훨씬 깨끗이 하고 집 바닥도 조금 훔친다. 평일간 정리하지 못했던 옷가지 류를 개서 넣어놓기도 하고 가방에 있는 것들도 한번씩 꺼내서 정리한다.
나에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는건 믿기지 않는 변화다. 원래는 커피도 밖에서 먹어야 할 것 같았고 맛있는 곳도 더 자주 찾아가야할 것 같았지만 집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심지어 조용하고 깨끗하다. 혼자서 이것저것 하기도 좋고, 일도 더 잘 된다.
오히려 가사 일도 더 많이 한다. 이사 와서는 적당한 가사 활동의 아름다움도 알게 되었다. 내가 머무는 곳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정돈하는건 확실히 마음챙김에도 도움이 된다.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내가 환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가사 일을 어느정도 끝내면 책상에 앉아 밀린 일이나 영어 학원 숙제를 한다. 그 후 학원에 가고 저녁 약속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온다. 저녁 약속에서 들어올 때 시간이 되면 평소 가고 싶었던 와인 가게나 집 앞 슈퍼마켓을 가서 한참 동안 물건들을 본다. 나는 뭘 좋아하지? 뭘 먹고 싶지? 오늘 새로운 물건은 이게 들어왔구나. 살 때도 있고 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내키면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주말을 이렇게 보내고 나면 생각도 정리 된다. 한 주에 내가 못했던 일, 잘했던 일, 더 디벨롭 해 봐야하는 일..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도 생겼다. 편하다. 그리고 스스로 더 단단해 진 것 같다.
평일에 일어나는 전쟁들도 멀리서 보면 하나의 먼지들일 뿐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 그리고 주말은 이런 마음먹기를 너무 잘 도와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앞으로도 주말을 이렇게 즐겨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