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동안 요리를 최대한 해 보고 싶었다. 대부분의 음식을 밖에서 먹다 보니 건강이 나빠지는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요리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지인들과 먹는 외부 음식도 너무 좋지만 가끔은 내가 만든걸 먹고 싶은 오묘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저녁은 외부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서 요리를 하는데 집중했다.
요리에 감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음식 즐겼던 엄마(엄마는 요리할 시간이 없었다)와 요리를 잘했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터라 무엇이 맛있는 것인지는 나름 잘 분별한다. 지금도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이다. 운동으로도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를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즐기는것으로 풀곤 한다.
오랜만에 건강하면서도 맛을 살린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시래기국 등 한식을 곧잘 하지만 염분 (그리고 볶음류는 생각보다 많은 설탕) 때문에 죄책감이 들때가 있었다. 이번 연휴에 양배추를 응용한 음식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했다. 밀가루 맛을 양배추가 어떻게 이길지도 궁금했다. 원래 관심있었던 토마토 100% 이탈리안 원팬 파스타도 이번엔 꼭 해보기로했다. 베이컨이나 고기류는 넣지 않고, 시중의 파스타 소스도 쓰지 않고.
요리엔 필수적으로 재료를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양배추 채썰기, 양파 썰기, 그리고 이탈리안 원팬 파스타에는 다진 마늘이 들어간다. 재료를 다듬을때면 일 생각이 나지 않아 좋다. 마침 얼마 전 받은 마늘이 있어 통마늘의 껍질을 정성스레 벗기고 으깼다. 원래 다진 마늘을 사곤 한다. 그치만 받은게 있으니 버리기 아까워 하나하나 까고 손질한다.
문득 어렸을때 다진마늘을 파는 곳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늘을 까고 다지는 와중에 나와 동생을 위해 매끼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던 외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이 뻗친다. 할머니는 마늘을 일일이 까고 다졌다. 비단 마늘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컬리 등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양배추, 당근 채썬것 등등을 할머니는 일일이 다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는 거의 15년이 다 되었다. 할머니에게 못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할머니 나 그래도 잘 살고 있어. 보고싶다. 할머니 내 말 들을 수 있어?
지금까지 만든 요리들은 꽤 만족스러웠다. 특히 살짝 매콤하게 만들었던 원팬파스타는 와인(산지오베제)과의 페어링이 기가막혀서 음미하는 재미가 있었다. 홀토마토를 사용한 요리는 처음이었다. 한국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탈리아 느낌이 났다. 어떻게 하면 더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샘솟았다. 미처 구비해놓지 못한 재료들도 떠올랐다. 양배추 요리는 수분감이 있어 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결국 치킨스톡…) 요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요리를 같이 나누고 객관적인 피드백을 듣는것도 즐거웠다. 와인 한두잔 곁들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좋았다. 요리를 하고 나누다 보면 요리한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도 알 수 있어서 즐겁다.
내일은 한식을 해 볼까 한다. 염분을 보며 죄책감은 좀 들겠지만 맛있는 전라도 음식을 해 볼 계획이다. 보고싶은 할머니의 손맛을 살리고 싶다. 그녀의 경지에는 이르기 어렵지만 흉내 정도는 내 봐야지.